(4) 등급 측정 - 쩐의 전쟁 * 한국의 돼지고기 등급체계 - 그런 것도 있었어? 우리나라에서 돼지고기 등급제는 영향력도 별로 없는데다, 등급 자체도 간단하니 짧게만 설명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돼지고기에도 등급이 있었어?”라며 놀라실 독자들이 많을 줄 안다. 그 때문에 돼지 등급제가 아주 최근에 도입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의 도입 시기는 소와 마찬가지로 1993년이다. 게다가 등급을 판정하는 방법 또한 소와 비슷하게 육질과 등지방 두께, 도체중 등을 고려하여 판별하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 왜 쇠고기 등급만 유명하고, 돼지고기 등급은 유명하지 않은 것일까?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돼지고기 등급을 표시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대체 그럴 거면 등급은 왜 매기는데?’라는 질문이 절로 터져 나오지만, 하여간 법이 그렇단다. 자, 문제의 법조항을 살펴보자. “국내에서 도축되어 생산된 [쇠고기의 경우], 대분할 부위인 안심, 등심, 채끝, 양지, 갈비와 이에 해당하는 소분할 부위의 [등급을 표시하여야 하며], 그 외의 쇠고기 부위 및 [돼지고기의 등급표시는 자율적으로 표시할 수 있다].” (강조 필자)84) 길면 빨간 색만 봐도 된다. 쇠고기 등급 표시는 의무지만, 돼지고기는 자율이란다. 한 마디로 ‘안 해도 그만’이라는 것. 굳이 등급표시 안 해도 잘만 팔리는 것이 돼지고기인데, 유통업자 입장에서 굳이 신경써가며 등급을 표시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굳이 등급을 매기고, 이 등급을 도축업자도 알고 중간 도매상도 알지만, 소비자만 까맣게 모르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회로를 가동하여 돼지 등급표시가 의무화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경우에 현행 등급제가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될까? 없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쇠고기만큼 커다란 힘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일단 1+ 출현율이 매우 낮고, 대부분이 1등급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벌어졌던 변별력 문제는 2013년 7월 개정된 등급제도 적용 이후 많이 완화된 것이 사실이다85). 하지만 아직 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 정말 의심스러운 부분은 현행 돼지 등급제가 한국인의 돼지고기 소비 형태에 맞는가이다. 아래에서 보다시피 한국인들은 삼겹살을 어느 부위보다도 선호한다. 한 해에 천만마리의 돼지를 소비하면서도 삼겹살만큼은 항상 모자라 금겹살 소리를 듣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그러니 소비자들에게 의미있는 등급제가 되려면 높은 등급 돼지의 삼겹살이 맛있고, 낮은 등급 돼지의 삼겹살이 그렇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림 13. 돼지 부위별 구성비와 소비량의 차이> 돼지 몸에서 가장 많은 부위를 차지하는 뒷다리(후지) 부위는 소비량이 따라주지 못해 남아돌고 있으며, 2~3위에 랭크중인 안심 및 등심 또한 마찬가지이다. 반면, 삼겹살은 구성비가 2~3위를 넘나드는 큰 부위임에도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86) 우선 아래 사진을 보고 어느 쪽 삼겹살을 고를 것인지 생각해보자. 친구들 놓고 설문을 해 봐도 왼쪽을 고른 사람은 없었으니 독자분들의 답도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삼겹살답게 잘 생긴 오른쪽은 그냥 1등급이고, 삼겹살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못생긴 왼쪽은 1+등급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림 14. 어느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오른쪽 녀석이 잘 생겼다. 놀랍게도 이쪽이 그냥 1등급이고 왼쪽 녀석이 1+ 등급이다. 등급제도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87) 문제는 바로 삼겹살이 길고도 넓은 부위라는 점이다. 소에 비유하자면 윗등심, 아래등심, 꽃등심, 채끝에 갈비 일부까지 싸그리 합쳐다가 대충 ‘등살’이라 부르는 것이나 비슷한 일이라 하겠다. 아래 사진을 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통통하고 잘생긴 흉추 부위에서, 홀쭉해서 삼겹살이 맞나 싶은 요추 끝부분까지 저 모든 고기들이 다 ‘삼겹살’로 분류된다. 아래 사진을 보면 같은 위치끼리 비교한다면 등급 간 차이도 크긴 하지만, 같은 등급 내에서 갈빗대 번호에 따른 차이가 더 커 보이지 않는가? 저 그림의 흉추 6/7번과 요추 6/7번을 보여주며 둘 다 1+등급 삼겹살이라고 하면 대체 누가 믿겠느냐는 말이다. 저 모든 부위가 동일하게 ‘삼겹살’로 팔리는 이상, 현재의 돼지 등급제가 크게 변별력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림 15. 육질등급별 삼겹살 품질 비교> 같은 위치라면 1+이 확실히 낫지만, 같은 등급 내에서도 위치에 따른 차이가 너무나 커서 등급 구분의 의미가 많이 떨어진다.88) 결국 삼겹살을 살 때는 어차피 써놓지도 않는 등급 따위는 필요 없고, 눈으로 봐서 예쁜 부위를 골라오는 것이 장땡인 셈이다. 그래서 삼겹살만큼은 발품을 팔아 구입하기를 권한다. 마트나 정육점에 들러 직접 구매한다면 썰어 놓은 부위들을 보며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주세요 (= 딴 건 필요없고 흉추 9~13번까지만 달란 말이다!)’ 할 수 있지만, 인터넷에서 고기를 주문하면 좋은 부위와 안 좋은 부위를 섞어서 배달해주기 때문. 그래서인지 도매가 차이도 그리 크지 않다. 2017년 1~11월 기준, 1+등급의 경우 평균 4966원/kg을 받은 데 비해 1등급의 경우에는 평균 4827원/kg에 낙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돼지 몸무게를 넉넉하게 어림잡아 80kg으로 계산하더라도, 1+등급과 1등급의 가격 차이는 마리 당 만 원 정도에 그쳤다는 뜻이다.89) -------------------------------------------------------------------주)83) 원래는 소와 동일하게 육질등급과 육량등급이 따로 매겨졌으나, 2013년 7월부터 둘이 합쳐지며 등급이 간소화되었다. 84)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2015-103호. 소·돼지 식육의 표시방법 및 부위 구분기준 제7조(등급 표시방법 등) 1항 85) 2013년 상반기(1~6월) 육질등급 비율은 1+등급: 6.4%, 1등급:60.8%, 2등급: 28.6%였다. 새로운 등급제가 적용되고 이 문제는 완화되어, 2017년 기준(1~12월) 1+등급: 28.9%, 1등급: 34.9%, 2등급: 31.9%로, 1:1:1에 가까운 분포를 보이고 있다. 축산유통종합정보센터, http://www.ekapepia.com/user/priceStat/gradePigBody.do 86) 정영철 외, 고수율·고급 돼지고기 생산 돼지 개발 연구, 정 P&C연구소, 2009. 김태성, 돼지고기 부위별 소비형태와 수출입 현황에 대한 국제비교, NHERI 리포트, 2012에서 재인용 87) 그림 15에 나온 사진을 잘라서 재구성 (출처는 주 88과 동일) 88) 축산물유통종합정보센터, http://www.ekapepia.com/user/distribution/distDetail.do?nd69038 89) 축산물유통종합정보센터, http://www.ekapepia.com/user/distribution/distDetail.do?nd5743 돼지는 몸무게가 약 110kg 나갈 때 출하하기를 권하고 있다. 잡아서 피를 빼고, 머리와 내장 등을 뺀 돼지 몸무게를 80kg으로 어림잡은 것은 분명 넉넉한 계산이다.